누가 물어본 김에 간만에 긴 글.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관련 논쟁과 관련하여 당시 널리 유통되었던 '광우병'에 관한 정보들이 허구이며 선동적이라는 멘트를 종종 들을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을 두고 난 윤한홍 “집무실 이전에 1조? 왜 이러나...광우병 선동 떠올라” 과 같은 기사에서도 같은 뉘앙스를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한때 공포로 한국을 휩쓸었던 광우병은 정말 미신적인 선동이었을까?
광우병은 인간 광우병이 아니다
광우병에 대한 공포는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미국산 소고기 수출 규모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그런데 이 광우병은 사실 '광우병'에 걸린 동물을 먹어서 생길 수 있는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variant Creutzfeldt-Jakob disease)'이다. 즉, 사람들 사이에 소위 통용되는 광우병이라는 용어는 엄밀히 말해 광우병이 아니다.
이게 무슨 얘기냐...?
먼저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은 매우 희귀하게 발생하며, 퇴행적으로 진행하는 치명적인 뇌 질환이다. 흔히 아는 치매의 주 원인질병인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 같은 것이 비슷한 병이다. 파킨슨병은 주로 운동능력이, 알츠하이머는 인지능력을 중심으로 퇴행하기 시작하는데 이와 비슷하게 크로이츠펠트-야콥병도 주로 노년에서 운동, 인지능력 퇴화를 주 증상으로 한다.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은 별 다른 이유 없이 노화 등의 경향에 따라 그냥 생기거나(산발형, sporadic), 유전적으로 나타나거나(유전형, hereditary), 오염된 수술 도구를 사용하여 뇌 등 인간의 중추신경계가 '직접' 병의 원인물질에 노출되거나(획득형, acquired), 광우병에 걸린 동물을 섭취했을 때(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 variant Creutzfeldt-Jakob disease) 걸릴 수 있다! 즉 광우병에 걸린 동물을 먹고 걸리는 변종-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이 '인간 광우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것이다.
여기서 용어를 더 정확히 하자면 동물들이 걸리는 광우병(aka Mad cow disease)은 한국어로는 소해면상뇌증(牛海綿狀腦症), 영어로는 BSE(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다. 이렇게 종간 구분 없이 용어가 난립하는 이유를 항간에서는 영국 -> 일본 -> 한국으로 보도자료를 들여오는 도중 번역상의 오류로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은 도대체 어떻게 생기는 것이냐?
코로나-19 사태와 백신에 따른 높은 관심도로 전 국민의 생물학적인 지식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지금,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기가 더욱 쉬워졌을지 모르겠다. 인간에게 병을 일으킬 수 있는 병원체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칼에 베인 상처에서 누런 고름을 만들어내는 세균들, 코로나-19의 원인이며 지독하게 변이를 거듭하는 바이러스, 발가락에 피어나는 곰팡이들(진균류). 그리고 우리가 식단에서 섭취량을 조절하며 애지중지 챙겨먹는 단백질 또한 놀랍게도 병원체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병을 일으키며, 심지어 단백질 상호간 전염이 가능한 단백질들을 프리온이라고 부른다. 프리온은 Proteinaceous infectious particle(단백질 감염성 인자)를 어찌저찌 줄여 부르는 말이다. 아미노산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작은 레고 조각이다. 아미노산의 종류와 갯수, 조합 방식에 따라 차곡차곡 조립되어 독특한 구조를 갖춘 단백질을 형성한다(아래 ①). 인체에는 알파 헬릭스, 베타 시트같은 규칙화, 정형화된 단백질 구조가 있다.
이 때, 몸 안의 어떤 단백질이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외부 조건으로 인해 유전정보에 의해 예정된 구조로 접히지 못할 수 있다. 그러면 해당 단백질이 몸에서 담당하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세포의 단백질 소각장(유비퀴틴)에서 파괴되지도 못하고, 잘 만들어진 다른 단백질들과도 한데 뭉친다. 이렇게 덩어리째로 '떡지면' 달라붙은 정상적인 단백질의 구조도 변성시킨다. 한 스텝 더, 이런 이런 떡진 단백질 덩어리(Plaque)는 결국 단백질이 담긴 세포를 파괴시킨다. 이런 변화는 인접한 다른 부위에 도미노처럼 퍼지며 병변을 확대한다(참고로 이런 양상은 치매의 원인인 알츠하이머 병의 진행[그림③]과도 매우 유사하다).
'단백질 감염성 입자'라는 이름에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자신의 복제본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비정상 단백질이 정상 단백질을 '감염' 시키는 것과 같다는 관점
(그림 ②)
이 담겨 있다.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의 경우 '오염된' 고기를 '먹어서' 걸릴 수 있다. 이로써 외부의 단백질이 몸 안으로 유입되어 연쇄적으로 정상 단백질을 고장내 발병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유전성 크로이츠펠트-야곱병은 노화로 유전자의 유지보수 역량에 한계가 생기며 유전 정보가 변화하여 비정상 단백질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여 걸린다. 이렇게 생긴 프리온은 마찬가지로 정상 단백질을 변형시킨다. 마지막으로 산발성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은 유전자에 코딩된 정보의 문제는 아닌데, 유전 정보라는 레시피에 따라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 세포의 생산 라인에 결함이 생겨 비정상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유전성으로 일어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산발성 유형도 노화와 함께 그 확률이 증가한다.
이렇게 걸린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의 경우 현재로써는 마땅한 치료 방법이 없다.
2022.03.20 - [내가 좋아하는 정보들/알고 먹으면 더 좋은 약 이야기] - 파킨슨병은 왜 걸리고, 어떻게 치료할까?
파킨슨병은 왜 걸리고, 어떻게 치료할까?
파킨슨병이란? 개요 알츠하이머와 비슷하게 노년기에서 관찰되는 질환이며, 운동완만(느린 동작), 경축(근육 경직), 안정시 떨림, 그리고 보행 및 균형장애 등의 운동장애를 주 특징으로 하는 진
subidubab.tistory.com
해당 포스트에서 다룬 바와 같이 파킨슨, 알츠하이머류의 퇴행성 질환에서도 증상 발현을 최대한 지연시키거나 부반응들을 조절하여 남은 삶의 질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치료한다.
그렇다면, 광우병에 걸린 소고기를 먹고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에 얼마나 걸리느냐가 중요해진다. 현재까지 전 세계적인 발병률과, 한국에서의 크로이츠펠트 야콥병 관리 체계에 대해 다음 글에서 다루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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